지난 창립전에 이어 두번째 전시를 열면서 익히 언급했던 Prath에 대한 뜻을 다시 간추려 보는 것은 우리 자신들에게도 의미있는
일이다. ‘Prath-프라트’는 성경 창세기의 에덴동산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갈라지는 네 근원의 강들-비손, 기혼, 힛데겔,
유프라테스 (각각 부유, 은혜, 결실, 능력의 의미)-중에서 가장 큰 강 유프라테스의 히브리어 이름이다. 초목을 적시는 ‘근원(根源)적
생명의 강’을 뜻하는 ‘Prath-프라트’라는 이름을 내걸고 강호생, 문수만, 이재경, 세 작가가 두번째로 또 다시 하나가 되어
새로운 작품을 선보인다.
2년 전 서울 인사동 미술세계 갤러리의
기획으로 창립전을 열었으며, 올해는 운보미술관의 기획 초대로 Prath전을 여는데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타이틀로 그 문을
열게 되었다. 우리 세 명의 시각적 작업은 너무도 상이하다. 아무리 보아도 닮은 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이 모임이
더 특이하고 더욱 등가적 가치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 세 작가의 작업을 깊숙이
들여다보아 그 뗄 수 없는 상보관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면, 강하게 응집된 세 작가의 귀한 가치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세 작가의 공통성은 시각적 언어로 말하는 미술의 표상을 거부할 수는 없지만, 언급한대로 전시의 주제, 곧 ‘보이지 않는
것’에 첫째 공통분모가 있다. 세 작가가 각각 표방하는 바, 생명과 근원, 그리고 역사가 바로 그것이다. 둘째로 Prath의
특이한 공통점은 ‘그림을 그렸다’라는 결과물에서가 아니라, 결과물이 나오기 이전의 서로 차별성이 뚜렷한 특별한 제작의 제반 과정에서
엿볼 수 있다. ‘작품을 제작하다’로 시작해서 혼신의 숨결을 불어 넣는 ‘땀방울 그 자체인 제작’의 마지막까지, 매 과정 속에
세 작가의 공통점이 담겨있다.
▲ 이재경, Between 160901
110x196x17cm, Pigment on Hanji-Tube, 2016
▲ 이재경, 나와 너 Ich und Du 170607
122x132cm, Pigment on Panel, 2017
▲ 이재경, 나와 너 Ich und Du 160801
60x60x5cm, Pigment on Canvas, 2016
먼저 이재경 작가는 작업의 토대가 되는 캔버스가 기존의 사각 프레임에서 벗어남으로써 정형화된 미적 정의의 폐쇄성에 대한 반발을
도모한다. 직접 자르고, 깎고, 바르고, 붙이는 등의 수고를 통해 캔버스를 다각도로 변형하며, 입체화하면서 무엇에도 고착되지
않는 자유를 모색한다. 비정형의 형상과 형상 그 ‘사이’를 주목하며 그 사이들 틈에서 오고가며 입체화한 캔버스들은 군더더기 없는
완성도와 함께 작가의 충실한 의도가 숨어있다. 이재경 작가의 작품에 대한 개념적 접근은 너무나도 간결하고 함축적이며 때론 웅장하기에
그 여운이 길다. 그래서 일까 이재경 작가의 정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 문수만, Coherence(031707)
Ø212cm, Acrylic on Canvas, 2017
▲ 문수만, Cloud(011707)
Ø174cm, Acrylic on Canvas, 2017
▲ 문수만, Procession of princes(021702)
62x32cm, Acrylic on Canvas, 2017
▲ 문수만, Fractal(121702)
Ø120cm, Acrylic on Canvas, 2017
문수만 작가를 살펴보자. 이 작가 역시 얻어진 결과물을 향한 과정을 보면 그야말로 처절한 사투 그 자체이다. 무엇보다 수많은
실험과 반복을 통해 얻어낸 질료를 다루는 능숙함과 기술적 한계를 극복한 제작 방식이 독자적이다. 누가 이를 흉내냈다한들 문 작가의
디테일과 절대몰입을 따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수만 고유의 원형 캔버스는 관람객을 처음부터 압도하는 힘을 지녔으며, 작품들
하나하나에 쏟아내는 지고의 정성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정직함에서 출발한 숭고한 소산이다. 이를 확인하자면, 이번 전시의 대표작에서도
볼 수 있듯 입체화 된 종(鐘)의 표면에 부조된 이미지를 새겨 넣음으로써 평면의 둥근 캔버스에 시간의 역사를 꼼짝없이 붙들어
매놓아 재현하고 있다. 집념 그 자체로 이미 문수만은 아티스트다.
▲ 강호생, The Margins of Life 20170215
265x390x3cm, Acrylic on Fabric, 2017
▲ 강호생, The Margins of Life 20170608
61x77x5.5cm, Acrylic on Fabric, 2017
▲ 강호생, The Margins of Life 20170215
265x130x3cm, Acrylic on Fabric, 2017
▲ 강호생, The Margins of Life 201700701
61x77x5.5cm, Acrylic on Fabric, 2017
마지막으로 내 작업은 언제나 그랬듯 수묵과 여백에 대한 유희이다. 내게 여백은 버리고 비움으로써 채우는 정신적 유희의 공간이다.
또한 재료에 대한 물성의 연구를 위해 많은 시간을 축적해 왔다. 결과물이 나오기 이전의 계획과 제작과정이 매우 면밀하다는 점에서
앞의 두 작가의 작업과 다르지 않다. 실험실을 방불케 하는 작업실도 그렇지만, 물, 물감과 먹물 각각의 양과 무게를 전자저울로
계량하는 것, 작업실 내부의 온도와 습도를 세심하게 맞추면서, 시간의 경영 안에서 스미고 번지는 물의 속성과 표정을 화면에 담아내야
하는 인내들은 결과물이 가져다 줄 환희 이전에 이미 예고된 고난들이었다. 연속적 재 탐구가 가져오는 강호생의 독특한 수묵처리는
간결미와 함께 신비함마저 드러낸다. 시각적 단순함의 겉모습에도 견딜만한 것은 천 마디의 말보다 말없고자 하는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요, 보이지 않는 무궁함에 집착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지만 있음(有)은 없음(無)이 구실하기 때문이라는 비밀을 알고 있기에
외로움이 벗이 되어버렸다.
지금까지 살펴 본 것은 우리 세 명의
작가들의 일차적 작업방식의 태도에 관한 내용에 불과하다. 당장의 소출은 기대하지 않을지라도 여전히 나는 이러한 우리들의 예술을
향한 아낌없는 사투를 사랑한다. 그 사랑(charity) 이후엔 어찌 열매 맺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렇듯 우리의 'PRATH'는
‘보이지 않는 것’의 전달자로서 오늘도 걷는다. 흐른다. ⓒ
약 력
▣ 이재경(李在敬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졸업
홍익대학교 대학원 동양화과 졸업
현재
한일현대미술작가회
개인전
2015 In the beginning (서울,인사아트센터)
2014 Delight (서울,아리수갤러리)
2013 Song of songs (청주,현대백화점 갤러리H)
2010 SeedⅦ (서울,물파스페이스)
2009 SeedⅥ (서울,가가갤러리)
2006 SeedⅣ (서울,인사아트센터)
2006 SeedⅢ (서울,인사아트센터)
1996 무채색의 삶 (서울,문예진흥원 미술회관 )
1994 사람들 (서울,덕원미술관)
1994 아트페어/초대전/단체전
2016 MANIF22!16(서울, 예술의 전당)
2015 PRATH(프라트)3인전(서울, 갤러리미술세계) 등 90여회